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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26 June 2004
이브 - 너 그럴때면 ♬

울고 싶을 때 너무나 속상할 때 친구들이 너의 마음을 몰라줄 때

많이 힘들 때 주저 않고 싶을 때 집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낄 때


그럴 땐 나를 생각해 너 초라해진대도 세상이 다 너를 외면한대도

나는 널 위해 사는걸 정말 널 위해 사는걸 내가 처음 고백한 그 날부터 언제 까지나

나를 알겠니 넌 혼자가 아니야 알 수 있다면 다시는 슬퍼하지마


그럴 땐 나를 생각해 너 초라해진대도 세상이 다 너를 외면한대도

나는 널 위해 사는걸 정말 널 위해 사는걸 내가 처음 고백한 그 날부터 언제 까지나

나는 널 위해 사는걸 정말 널 위해 사는걸 내가 처음 고백한 그 날부터 언제 까지나


Posted by latkagravis at 6:42 AM 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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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19 June 2004
결혼하고 싶은 여자 - 이신영 어록 모음

♥서른살 넘게 살다 보니 삶의 지혜도 얻게 됩니다. 인생엔 견뎌야 할 때가 있다는 것. 눈보라 친다고 해서 웅크리고 서있으면 얼어 죽는다는 것. 눈비바람 맞으면서도 걷고 또 걸어 가야 한다는 것! 처절한 고통의 현장에서 눈물콧물 흘리는 이신영이었습니다

♥기상청 발표 오늘의 날씨. 세 여인의 인생은 저기압의 영향을 받아 구름끼고 흐리며 간간이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도 내리고 있습니다. 과연 그 무엇이 고기압을 몰아다 햇살을 비춰줄 수 있을지.. 우리 인생의 비는 언제쯤 그칠까요?

♥계절의 여왕 5월에 살을에고 뼛속을 후벼파는 한파가 밀려옵니다...
사랑은 떠났고 봄은 오지않습니다...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는 마음 이쓸쓸함에 얼어서 영원히 냉동보관되면 어찌할까요...
하늘하늘 날리는 꽃잎이 엄동설한의 눈발로 보이는 현장에서 심장에 동상걸린 이신영입니다

♥기다리는 건 왜 오지 않을까.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길 기다림, 강도가 덮쳐 주길 기다림. .기다리는 건 오지 않습니다. 그럼 언제 오나요? 기다리지 않을 때. 기다리지 않기를 다짐하는 현장에서 ... 그래도 혹시 기다려보는... 이신영입니다.

♥소중한 건 떠나고, 기다리는 건 오지 않고, 바라지 않던 일은 내게 찾아옵니다. 겨울이 가면 이렇게 봄이 오는데, 사랑이 떠난 자리엔 어찌하여 또 다른 사랑이 오기도 하고, 영영 슬픔으로만 가득하기도 한 것일까요. 누군가 내게 인생의 해법을 건네주었으면 하고 바라는...쓸쓸한 봄날의 이신영입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과 환상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서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나는 이제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을 버렸습니다. 지금 걷고 있는 우리의 이 길도 아름답다는 걸 깨달은 현장에서, 세상 떠난 동창의 명복을 비는 이신영입니다.

♥또 다른 세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이 끝나면 무엇을 해야할까요?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동트는 아침, 새로운 인생을 다짐하는 현장에서, 심장이 뛰고 있는 이신영입니다.

♥내 인생이 짙은 안개에 휩싸였습니다. 앞이 내다보이질 않고, 가다가 낭떠러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눈물납니다. 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불빛하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오기와,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그것이 저만치서 반짝이는 지금 내 인생의 등대입니다. 돌부리에 채여넘어지고 불빛이 멀어보여도 난 뛰고 또 뛰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이신영입니다.

♥내일은 해가 뜰까요. 뜰꺼라 믿습니다. 그럼 천둥번개 비바람치는 오늘밤엔 무엇을 해야할까요. 해가 뜬 내일, 잘 달릴 수 있도록 튼튼한 운동화를 준비하고, 마실 물도 준비해야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내일은 반드시 해가 뜬다는 믿음! 인생이 끝났을땐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사랑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끝을 모르고 떨어지던 낭떠러지 맨 밑바닥에, 푹신한 실크쿳션이 깔려있을지도 모르는게 인생입니다.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행복합니다. 하지만 지금 난 일을 찾아야합니다. 일을 찾으면 또 사랑이 떠날까요.. 아뇨아뇨 앞서 걱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한민국 몇퍼센트가 속고사는것일까..
내아내가..내남편이 날 사랑하고있다고,내아내나 남편의 눈동자 그너머에 , 다른 사랑을 향한 애뜻함이 도사리고 있다면...사랑한다며 건내주는 꽃다발속에 내목덜미를 물어버린 독사한마리가 숨겨져 있다면....결혼한 옛날 애인이 술취한 목소리로 걸어오는 전화를 매일밤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받고있는지...가장 가까운 그이 아내만 모르고 있습니다...
가지않는 길에 대한 동경과 환상은 지금 내가 걷고있는 이길에서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나는 이제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을 버렸습니다..
지금 걷고 있는 우리의 이길도 아름답다는걸 깨달은 현장에서 세상떠난 동창의 명복을 비는 이신영입니다...


Posted by latkagravis at 12:07 PM 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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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12 June 2004
예언자 - 칼릴 지브란

사랑에 대하여


그러자 알미트라는 말하기를, 사랑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침묵이 사람들 위에 덮혀졌다. 그는 큰 목소리로 말하였다.

사랑이 너희를 손짓하거든 따르라.

비록 그 길은 어렵고 험할지라도.

그 날개가 너희를 품거든 그의 하는대로 내 맡기라.

비록 그 깃 속에 숨은 칼이 너희들에게 상처를 내더라도.

그가 너희에게 말하거든 믿으라,

비록 그의 음성이 너희 꿈을 깨쳐 버리기를 저 하늬바람이 동산을 들부수듯이 할지라도.



왜? 사랑은 너희에게 면류관을 씌우기도 하지만,

또 너희를 십자가에 못박기도 한다. 그는 너희를 키우기도 하지만 또 너희를 잘라 버리기도 한다.

그는 너희 꼭대기에 올라가 햇볕에 한들거리는 그 연한 가지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지만,

또 그렇듯이, 너희 뿌리에 내려가 땅에 얽히려는 그것들을 흔들어내기도 한다.



그는 곡식 단을 거두듯이 너희를 거두어 자기에게로 모을 것이요,

그는 너희를 두드려 알몸으로 만들 것이요,

그는 너희를 키질하여 겨를 털어 버릴 것이요,

그는 너희를 갈아 흰 가루를 만들 것이요,

그는 너희를 익혀 물렁물렁하게 할 것이요,

그런 다음 그는 너희를 자기 거룩한 불에 놓아 거룩한 떡으로 구워 하나님의 거룩한 잔치에 내놓을 것이다.



사랑이 이 모든 일들을 너희에게 베풀어 너희로 너희 마음 속의 신비를 깨닫게 할 것이요, 그것을 깨달음으로 너희는 한삶(大生命)의 깊은 마음의 한 가닥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두려운 생각에 너희가 사랑의 평안과 즐거움만을 찾을진대,

차라리 너희의 벗은 몸을 가리우고 사랑의 타작 마당에서 빠져 나감이 좋으니라,

거기서 나가 저 계절이 없는 세상으로 들어가라,

거기서는 너희가 웃어도 웃음을 채 웃지 못할 것이요, 울어도 울음을 채 울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저 자신 밖에 아무 것도 주는 것이 없고,

자 자신에게 밖에 아무 것도 뺏는 것이 없다.

사랑은 소유하지도 않고 누구의 소유가 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사랑은 사랑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사랑할 때에는 "하나님은 내속에 계신다."하지 마라, 그보다도 "나는 하나님 안에 있노라."하라.

또 너희가 사랑의 가는 길을 지도할 수 있다 생각마라, 그 보다도 사랑이 너희를 자격 있다 보는 때면 너희 길을 그가 지시할 것이다.



사랑은 아무 소원이 없고 다만 사랑 자체를 채울 따름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만일 사랑하면서도 소원을 품지 않을 수 없거든 이것이 너희 소원이 되게 하라.

녹아서 흘러 가며 밤을 향해 노래를 불러 주는 시내처럼 되기를,

지나친 다정의 고통을 알게 되기를,

너희가 사랑으로 하는 알아줌으로 서로 서로 상처를 입게 되기를,

그리하여 즐겨서, 좋아서 피를 흘릴 수 있기를,

새벽에는 마음의 날개를 치고 일어나 또 하루 사랑의 날을 보내게 되었음을 감사할 수 있기를,

낮에는 쉬며 사랑의 황홀을 명상할 수 있기를,

저녁엔 감사로 집에 돌아올 수 있기를,

그리고는 속으로는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가도하며 입으로는 찬송하는 노래를 부르며 잠이 들 수 있기를.





결혼에 대하여



그 다음 알미트라는 다시 말하기를, 스승님 결혼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대답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나기를 같이 했으니 있기도 영원히 같이 해야 한다.

너희는 저 죽음의 흰 날개가 너희 날들을 흩어 버린 때에도 같이 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잠잠 하신 기억 속에서까지도 너희는 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너희의 같이 함에는 떨어진 사이가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늘 바람으로 너희 사이에 춤추게 하여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얽어 매지는 말아라.

그보다도 그것으로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뛰노는 바다 같게 하라.

서로 서로의 잔을 채워 주라, 그러나 한 잔에서 같이 마시진 말라,

서로 서로 제 빵을 주라, 그러나 한 조각에서 같이 먹진 말라.

노래하고 같이 춤추고 즐기라, 그러나 서로 서로 혼자 있게 해주라.

마치 거문고의 줄들이 한 가락에 떨기는 하여도 줄은 서로 따로 따로이듯이.

너희 마음을 서로 주라, 그러나 서로 아주 내맡기지는 말라.

오직 한삶(대생명)의 손만이 너희 맘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이 서되 너무 가까이는 말라.

성전의 기둥은 서로 떨어져 서는 것이요,

참나무, 사이프러스는 서로 서로의 그늘 밑에서는 자라지 않는 법이다.



아이들에 대하여



또 가슴에 애기를 안은 한 여인이 말하기를, 우리에게 어린이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는 말하기를,

너희 어린이는 너희 어린이가 아니다.

저들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한 삶(대생명)의 아들딸이니라.

저들은 너희를 거쳐서 왔으나 너희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요,

또 저들이 너희와 같이는 있으되 너희 것은 아니니라.



너희는 저들에게 너희 사랑을 주라, 그러나 너희 생각을 주려고는 말아라.

저들은 저들의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저들의 몸에 집을 주어라, 그러나 그 혼에까지 주려고는 말아라.

저들의 혼은 내일의 집에 산다. 그 집에는 너희는 찾아 갈 수가 없다. 꿈에도 갈 수 없다.

너희가 저들같이 되려 애씀은 좋으나, 저들을 너희같이 만들려 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생명은 뒤로 물려 가는 법이 없고, 어제에 머무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활이요, 그 활에서 너희 자녀라는 산 살이 날아 나간다.

활량이신 그가 무한의 활터 위에 그 과녁을 겨누고 그 살이 빠르고 멀리 가도록 그 힘을 다하여 너희를 당겨 구부리신다.

너희는 그의 손에서 오는 구부림을 즐거움으로 받아라.

그는 날아가는 살을 사랑하듯이 또 억센 활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주는 데 대하여



그 다음, 한 부자가 말하기를, 주는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대답하기를,

너희가 너희 가진 것에서 줄 때 그것은 주었다 할 수 없다.

참으로 줌은 너희가 너희 자신을 주는 때다.

대체 너희 소유란 것이 무엇이냐? 내일의 필요를 걱정하여 끼고 지키고 있는 물건에 지나지 않지 않으냐?

또 내일이라고, 순례자를 따라 거룩한 성을 향해 가면서 지나친 조심성을 부려 자취도 없는 모래밭에 뼈다귀를 묻어 두는 강아지에게, 내일이 무엇을 가져다 줄 듯 싶느냐?

또 모자랄까 걱정함이 무엇이냐, 그것이 곧 모자람 아니냐?

집에 샘이 그득 찬대도 목마를까봐 두려워한다면 그 목마름은 축일 길이 영 없지 않으냐?





세상에는 많은 것은 가지면서도 조금 밖에 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주되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고로 그 숨은 욕심이 그나마의 줌도 더럽게 만들고 만다.

또 가진 것이 별로 없으면서 그 가진 전부를 주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생명을 믿고, 생명의 아낌없이 줌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궤짝은 비는 날이 없을 것이다.

즐거운 맘으로 주는 자가 있다. 그들에겐 그 즐거움이 곧 상급이다.

싫은 맘으로 주는 자가 있다. 그 싫은 맘이 곧 그 받는 세례다.

또 주면서도 싫은 생각도 없고, 즐거움을 위하는 맘도 없고, 덕으로 여기는 생각조차 없이 주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줌은 마치 저 건너 골짜기의 화석류가 공중을 향해 그 향을 뿜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손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들의 눈 뒤에서 하나님은 땅을 향해 빙긋이 웃으신다.



청함을 받고 주는 것이 좋으나, 청함을 받기 전에 알아 차리고 줌은 더 좋다.

그리고 아낌 없이 주려는 맘엔 받아 줄 자를 찾는 즐거움이 주는 그것보다 더한 것이다.

또 너희가 아낄 만한 것이 무엇이냐?

너희 가진 모든 것이 어떤 날 가서는 다 주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라, 이제 주라, 때를 놓쳐 뒤엣 사람의 것이 되게 하지 말라.

너희는 툭하면 "주고는 싶건만 다만 보람이 있는 자에게" 한다.

너희 과원으 나무는 그런 소리 하지 않고, 너희 목장의 가축들도 그러지는 아니한다.

저들은 제가 살기 위해 준다. 그것은, 아끼는 씨로 가기 때문이다.

과연, 제 낮을 만나고 제 밤을 만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네게서 무엇이나 받을 자격이 있다.

또 생명의 큰 바다에서 마실 만한 사람이라면, 네 조그마한 흐름에서 그 잔을 채울만도 하다.

또 보람이 있다면, 받아 주는 그 용기, 그 확신, 그보다도, 그 사랑 속에 들어 있는 그것보다 더 크게 보람진 것이 어디 있느냐?

또 너는 누구냐, 감히 나더러 가슴을 헤쳐 자랑을 내놓으라 하여, 그를 벗겨 놓고 다뤄 보고, 그 서슴치 않고 자랑하는 꼴을 보자는 너는 누구냐?

먼저 네가 줄 자격이 있나, 주는 그릇이 될 수 있나를 물어 보아라.

참을 말한다면, 생명이 생명에다가 주는 것이요, 스스로 주는 자로라 생각하는 너희는 하나의 증인이 될 뿐이다.



그리고 너희 받는 자들아, 인생은 다 받는 자다.

신세 진다는 생각을 말라, 그러면 너희와 너희에게 주는 자 위에다 멍에를 메움이 된다.

차라리 주는 자와 한 가지 그 선물을 날개처럼 타고 위에 오르라.

지나치게 빚진 생각을 함은 아낄 줄 모르는 땅을 그 어머니로 삼고 하나님을 그 아버지로 삼는 그의 넓은 가슴을 도리어 의심하는 일이 된다.



일함에 대하여



그 다음은 어떤 농사군이, 말하기를 일함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대답해 말하기를,

너희가 일을 하는 것은 땅과 땅의 혼으로 더불어 발걸음을 맞추기 위하여서다.

왜냐하면, 게으름을 피는 것은 절기에 대하여 외면 함이요, 생명의 행렬에서 빠져 나감이기 때문이다. 당당하고도 의젓한 복종으로 무한을 향해 나가는 그 행렬에서.



너희가 일을 할 때는 너희는 한 개 피리요, 그 속을 뚫고 그때 그때의 속삭임이 음악으로 번져 나가는 것이다.

너희 중 누가, 남들이 다 한데 어울려 노래를 부르는데, 혼자 먹먹하여 벙어리 갈대 노릇을 하고 싶겠느냐?



너희는 언제나 이런 말을 들어 왔다. 일은 망한 거요 노동은 사나운 팔자라고.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일을 할 때는 이 땅의 꿈의 가장 먼 한 토막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그 꿈이 그려지던 때부터 너희 몫으로 내놨던 그 한 토막을.

또 너희가 끊임 없이 노동하면 사실은 너희가 생명을 사랑하는 일이 되고,

그리고 노동을 통해 생명을 사랑함은 생명의 가장 깊은 비밀을 잘 알게 되는 일이다.



그러나 너희가 만일 괴로운 나머지 세상에 태어 남을 고통이라 하고 육신을 받들어 감을 이마에 쓰여진 저주라 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너희에게 대답하거니와 너희 이마의 땀 밖에 아무 것도 그 위에 쓰여진 것을 씻어 버릴 자가 없느니라.



너희는 또 인생은 어둠이라, 이르는 말을 들었고,

너희가 지친 나머지 지침에서 나온 그 소리에 그냥 맞장구를 치는 일이 있다.

나는 말하거니와, 인생은 열심히 없는 한 과연 어둠이요,

모든 열심은 지식이 없는 한 소경 노름이요,

모든 지식은 일함이 없는 한 쓸데 없으며,

모든 일함은 사랑이 없는 한 빈탕이다.

그러나 너희가 사랑으로 일할 때에 너희는 너희 자신을 너희 자신에게 붙들어 매고 또 너희 서로 끼리에 붙들어 매고, 또 하나님께 붙들어 매게 된다.



그리고, 사랑으로 일한담은 무어냐?

그것은 심정에서 실을 뽑아 내어 옷을 짓기를 마치 너희 사랑하는 것들이 입기나 할 듯이 함이다.

그것은 애정으로 집을 세우되 마치 너희 사랑하는 것들이 그 집에 살기나 할 듯이 함이다. 그것은 간절한 맘으로 씨를 뿌리되 마치 너희 사랑하는 것들이 그 열매를 먹기나 할 듯이 함이다.

그것은 너희 만드는 모든 것 속에 너희 영의 숨을 불어 넣음이요.

또는 모든 축복받은 돌아 간 이들이 너희 주위에 둘러 서 있어 너희를 지켜 보고 있음을 알고 하는 일이다.



나는 너희가 잠꼬대나 하듯이 때때로 하는 말을 들었다. "대리석을 가지고 일을 하여 제 혼의 모습을 돌 속에서 찾아 내는 사람은 땅을 가는 자보다 더 귀하고,

무지개를 잡아 헝겁 위에 사람의 형상을 그려 내는 자는 우리 발에 신을 신을 만드는 자보다 높다."고.

그러나 나는 잠꼬대가 아니라, 대낮의 뚫어지게 깬 맘으로 말하거니와, 바람은 큰 참나무라 해서 조그만 풀잎새에 대해 들려주는 것보다 더 알뜰한 소리를 해주지는 아니하더라.

그리고 제 사랑으로 바람 소리를 변하여 즐거운 노래가 되게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로 위대한 사람이니라.



일은 사랑이 볼 수 있게 나타난 것이다.

너희가 사랑으로 하지 못하고 싫은 맘으로 밖에 할 수 없거든, 너희는 차라리 일을 떠나 성전 문에 앉아, 기쁨으로 일하는 이들의 구제를 받는 것이 나으리라.

왜냐고? 너희가 만일 쌀쌀한 맘으로 빵을 굽는다면, 너희는 사람의 주림을 반 밖에 못 채우는 쓴 빵을 굽는 것이요.

너희가 만일 투덜거리며 포도를 밟는다면, 너희 투덜거림이 그 술 속에 독을 뿜을 것이요,

또 너희가 천사같이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 노래함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사람들의 귀를 싸매어 낮의 소리, 밤의 소리를 들을 수 없이 만듬이 될 것이다.



가르침에 대하여



그 다음 한 교사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가르침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말했더라.

아무도 네 지식의 동틀 속에 이미 반쯤 잠자고 있었던 그것 밖에 다른 무엇을 너희에게 알려 줄 수는 없다.

제자들을 데리고 성전 그늘 밑을 걸어 가는 스승은 제 지혜를 준다기보다는 제 믿음과 사랑함을 주는 것이다.

그가 정말 어질다면 너희더러 자기 지혜의 안방에 들어가라고는 아니했을 것이요, 그보다도 너희를 너희 마음의 문턱으로 인도해 주었을 것이다.

천문가가 자기의 공간에 대한 지식을 너희에게 말은 해줄 수 있으나, 자기 지식을 그대로 너희에게 줄 수는 없는 것이요,

음악가가 공간에 들어 찬 리듬을 너희에게 노래하여 줄 수는 있으나, 그가 그 리듬을 붙잡는 귀나 거기 맞춰 부르는 목소리를 너희에게 줄 수는 없다.

또 셈의 지식에 익은 사람이 너희에게 다루고 재는 세계를 말하여 줄 수는 있으나, 그가 너희를 그리로 이끌 수는 없다.

한 사람의 환상이 그 날개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 하나 하나가 다 하나님의 아시는 안에 따로 따로 서듯이, 그렇듯이 너희가 하나님을 알고 땅을 이해하는 데서도 각각 따로 하여야 할 것이다.



벗 사귐에 대하여



또 어떤 젊은이가 말하기를, 벗 사귐에 디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는 대답하여 말하기를,

너희 벗은 너희 요구가 응답된 것이니라.

그는 너희가 사랑으로 심고 고마움으로 거둬들이는 너희 밭이니라.

또 그는 너희 밥상이요, 너희 화덕 옆이다.

너희가 그에게 가는 것은 주린 생각 때문이요, 너희가 그를 찾는 것은, 평안을 얻기 위해서 아니냐?



너희 벗이 제 마음을 너희에게 얘기할 때는 너희는 마음 속에 "아니"하기를 두려워 말며, "그렇다"하기를 꺼리지 말아라.

또 그가 잠잘할 때에도 너희 마음은 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기를 쉬지 않고 있다.

벗 사이에는 말이 없어도 모든 생각, 모든 소원, 모든 기대가 소리 내지 않는 기쁨으로 서로 주고 받아지는 것이다.

벗을 떠나는 때도 너희는 슬퍼 마라.

산 모습이 올라 가는 자에게 저 들에 있을 때에 더 분명하듯이 너희가 벗에게서 가장 귀히 여기는 그것도 그가 없는 때에 더 분명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벗을 사귀는데 정신을 깊이 하는 밖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두지마라.

사랑 자체의 신비를 드러내는 밖에 또 다른 무엇을 찾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그물 던짐이다. 그리고 거기는 쓸데 없는 것만이 걸린다.



너희 가장 좋은 것을 벗에게 주라.

그가 내 썰물 때를 알아야 한다면 또 그 밀물 때도 알게 하라.

시간을 죽이기 위해 벗을 찾는다면 무엇이 벗아냐?

언제나 시간을 살리기 위해 그를 찾아라.

그는 너희 모자람을 채우잔 것이지만, 결코 너희 텅 빈 것을 채우잔 것은 아니다.

또 유쾌한 정으로 웃고 즐거움을 서로 나누라.

이슬 방울 같은 작은 일들 속에서 사람의 심정은 그 아침빛을 보며 소생함을 얻는 것이다.


Posted by latkagravis at 2:44 PM 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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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6 June 2004
“아빠, 이제 활짝 웃으세요”…‘효녀

[동아일보 2004-06-04 18:16]

김소희(22?빈폴골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딸을 지켜보던 아버지 김주영씨(51)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그저 딸의 어깨를 두드리며 “수고했다”는 말만 건넸다. 아빠를 껴안은 김소희는 “건강하셔야 돼요”라며 다시 울먹였다. 그의 빨간색 티셔츠엔 ‘I ♥ Father’(아빠, 사랑해요)가 수놓여 있었다.

루키 김소희가 제4회 레이크사이드 여자 오픈대회(상금 2억원)에서 감격적인 프로 첫 우승컵을 폐암 투병 중인 아버지에게 바쳤다.

4일 경기 용인시 레이크사이드CC 서코스(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 3라운드. 1, 2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12언더파의 무결점 플레이를 펼쳤던 김소희는 이날 보기를 3개 했으나 버디도 5개 잡아내 합계 14언더파 202타로 프로 첫 승을 따냈다.

그의 아버지 김씨는 지난해 4월 신장암 수술을 받았으나 암이 폐로 전이되는 바람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김씨는 “폐암 말기라 의사들이 고칠 수 없다고 해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 소희가 우승해 병이 낫는 것 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2녀 중 막내인 김소희가 경기 수원시 구운중 1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이후 김씨는 10년간 캐디백을 메고 딸을 돌봤다. 갤러리로 경기를 지켜본 것은 지난달 MBC-XCANVAS오픈(7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라고.

오래 서 있기 힘든 몸인데도 김씨는 이번 대회 3라운드 내내 딸의 경기를 따라다녔다. 그는 “저녁엔 다리를 주물러야 잠을 잘수 있는데 소희가 1, 2라운드 계속 선두에 나선 때문인지 어제 저녁에는 다리도 안 주무르고 잤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정성이 통했을까. 지난해 2부투어에서 4차례 ‘톱10’에 올랐으나 우승이 없었던 김소희는 이번 대회에서 완벽한 플레이로 쟁쟁한 선배들을 제쳤다.

“아버지의 병이 나을 수 있다면 매홀 버디를 하겠다”던 그는 3라운드 동안 무려 17개의 버디를 잡아냈다. 그는 “우승상금(3600만원)을 모두 아버지에게 드리겠다”고 했다.

한편 지난해 신인왕과 상금왕을 휩쓴 김주미(하이마트)는 이글 1개 포함해 6언더파를 몰아치며 단독 2위(11언더파 205타)를 차지했고, 데일리베스트인 65타를 때린 김희정(MFS골프)은 3위(9언더파 207타)에 올랐다.

용인=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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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Sunday, 6 June 2004 3:36 AM 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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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22 May 2004
대통령의 눈물

.. 하늘도..박대통령도.. 간호사 광부들 모두가 울었다.

5.16혁명 뒤 미국은 혁명세력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화이트 하우스까지 갔었지만 끝네 케네디는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되어 있는 서독에 손을 벌리기 위해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데 성공했다.

서독에 간호사 광부가 필요해서 그들을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았다.

고졸 출신 광부 5000명을 모집하는데 4만 6천 여명이 몰렸다. 그들 중에 학사출신자들도 수두룩 했다. 면접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싶어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 만들어 면접을 봤다.
서독항공사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공항에는 간호사 광부들의 가족 친인척들이 나라가 가난해 이역만리로 돈 벌로 가는 가족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 공항은 눈물 바다가 되었다.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히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간호사들에게 처음 시킨일은 시체닦는 일이었다.
어린간호사들은 어머니~! 어머니~~! 하며 울면서 거즈에 알코를 뭏혀가며 시체를 닦았다.
하루에 또 닦고 또 닦았다.

광부들은 1000미터이상의 아래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사람들에 비해 열 몇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광부일을 했다.

서독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저 가난한 한국에서 온 간호사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어떻게 저렇게 일하나 싶어,,그들의 별명을 코리안엔젤이라고 붙여 주었다.

몇년 뒤 서독 뤼부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하게 되었다. 단군이래 한국의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기는 처음이었다.
미국 노스트웨스트 항공사와 계약까지 했지만 미국정부는 쿠데타정부에게 비행기를 빌려줄 수 없다는 생각에 계약을 취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독에서 친절하게도 항공기를 보내주었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대통령은 창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규~!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은 일행은 뤼부케 대통령과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기뻐하며 5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통령이 연설하기로 되어 있는 곳에 갔다.
박대통령과 뤼부케 대통령 수행원들이 강당에 들어갔을때 양복을 입은 광부들의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연설에 앞서 애국가가 나왔을때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해 이역만리에 와서 1000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는 광부들을 앞에 놓고 있으니 목이 메여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합시다.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대통령은 계속 이말을 반복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역만리 수천미터 아래서 고생하는 광부들과 시체를 닦으며 일하는 어린 간호사들..고국의 배곰고 있는 국민들 생각이 나서 더이상 참지 못해 그는 눈물을 터뜨렸다.

대통령이라는 신분도 잊은 채 눈물을 터뜨리자 광부들도 울면서 육여사 앞으로 몰려가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다. 옷이 찢으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여사는 울면서 자식같이 한명 한명 껴안았다. 광부들은 뤼부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한국을 도와주세요..열심히 일하겠습니다..무슨일이든지 하겠습니다."를 반복했다. 뤼부케 대통령도 울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강당에 들어가지 못한 광부들이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여사를 붙잡고.."어디 가세요~!..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고향에 가고 싶어요..부모님이 보고 싶어요..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여사를 놓아 줄 지 몰랐다.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부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이 도와 주겠습니다."라고 했다.

서독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려면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돈 꼭 갚겠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돈 좀 빌려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당시 유엔에 등록된 나라수는 120여개국.. 필리핀 국민소독 170여불, 태국 220여불 등..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 인도만이 있었다.
120여개국 나라중에 인도다음으로 못사는 나라였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100달러를 위해 4600년이 걸렸다.

우리는 머리카락을 짤라다 외국에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며 머리카락 파세요~ 하며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드신 분들은 서울구경 가기 위해 머리카락을 짤랐고.. 쌀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고..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이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였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1977년은 수출 100억 달러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000달러를 해?" 하며.. 세계가 한국을 경이적인 눈빛으로 바라 봤다.

조국 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 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박대통령이 왜 그토록 경제발전에 집착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는 큰 아버지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 우리세대 더 나아가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을 생각할 줄 아는 책임감 있는 큰 아버지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이만큼이라도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 이유는 박대통령과 당시 세대들이 힘을 합쳐 시체를 닦으며..수천미터 지하에서..월남에서 피를 흘리며.. 저 중동 열사에서..일하고 또 일한 세대들의 고마움을 우리 후손들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당시 한국의 입장에서 돼지목에 진주목걸이인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허구한날 반대만 일삼고 자유대한민국의 전복을 획책하는 무리들과 싸우며 일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민주주의도 경제력이 뒷받침 되었을때 꽃을 핀다.
자.. 그토록 외쳤던 민주주의를 펼쳐보라!
이제 이것은 우리세대들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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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경북 선산(善山) 출생. 가난한 농부인 박성빈(朴成彬)과 백남의(白南義) 사이에서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만주의 신경(新京:現 長春)군관학교를 거쳐 1944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8 ?15광복 이전까지 주로 관동군에 배속되어 중위로 복무하였다.

광복 이후 귀국하여 국군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1946년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 제2기로 졸업하고 대위로 임관하였다. 그 후 육군포병학교장, 제5사단장, 제7사단장, 제1군 참모장, 제6관구 사령관,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제2군 부사령관 등을 역임하였다. 1949년 사상 관련사건에 연루되어 군법회의에 회부된 적도 있었다. 당시 신문보도에 의하면 여수 ?순천사건 관련공산주의 혐의자로 되어 있는데,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으나 구명운동에 의해 복역은 면제되었다.

1961년 5?16군사정변을 주도하고 7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었으며 1962년 대통령권한대행을 역임, 1963년 육군대장으로 예비역에 편입되었다. 이어 민주공화당 총재에 추대되었고, 그 해 12월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1967년 재선된 후 장기집권을 위하여 1969년 3선개헌을 통과시켰다. 제3공화국 재임동안 '한?일국교정상화'와 '월남파병문제'를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였다. 1972년 국회 및 정당해산을 발표하고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 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유신정권인 제4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유신시대 초기에는 새마을운동의 전국민적 전개로 농어촌의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였고, 제5차 경제개발계획의 성공적 완성으로 국민들의 절대적 빈곤을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였다. 그러나 상대적 빈곤의 심화와 장기집권에 따른 부작용, 국민들의 반유신 민주화운동으로 그에 대한 지지도가 약화되자 긴급조치를 발동하여 정권을 유지하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지식인 ?학생 ?종교인이 중심이 된 민주화운동과 경제개발에서 소외된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확보운동은 더욱 드세졌다. 이러한 가운데서 내치(內治)의 어려움을 통일문제로 돌파하고자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민족통일의 3대원칙으로 규정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과 1973년 6?23선언이라 불리는 '평화통일외교정책'(할슈타인원칙의 폐기)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의 획기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정책면에서는 북한의 비협조와 당시의 국제정세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974년 8월에는 그의 부인 육영수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조총련계 문세광(文世光)에게 저격당해 사망하였다. 이러한 정권의 위기는 결국 ‘부마사태(釜馬事態)’를 야기시켰으며,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만찬석상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의 저격으로 급서(急逝)하였다.

저서로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 《민족의 저력》 《민족중흥의 길》 《국가와 혁명과 나》 《지도자의 길》 《연설문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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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15 May 2004
보리밭

작사: 박화목
작곡: 윤용하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휫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 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이 노래는 시인 박화목 선생이 고향인 황해도 사리원의 보리밭 풍경을 그린
시에 작곡가 윤용하 선생이 부산 피난 시절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이다.

윤용하 선생이 평소 친분이 있던 박화목 선생에게 마음을 달래줄 서정 가곡
하나 만들자고 제의한 데서 이 노래가 나왔다.

작사자가 건넨 시의 제목은 '옛 생각'이었지만, 작곡자는 이를 지금의
제목과 같은 '보리밭'이라 제목을 바꾸어 1951년에 작곡했고, 1953년에
'새로 지은 우리 노래의 밤'이라는 음악 발표회 행사에서 발표하였다.

그후 1965년 가수 문정선이 대중가요로 편곡된 음반을 내게 되어 더 널리
애창되는 계기가 되었다.

1953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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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2 May 2004
꺼버린 핸드폰

오늘은 한달 중 제일 기다려지는 용돈 받는 날. 오늘이 더욱더 기다려진 까닭은 수학여행 준비로 용돈을 좀더 넉넉히 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손에 쥐어진 돈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3만원. 참고서 사랴, 학용품 사랴. 정말 3만원 가지고 무얼 하라는 건지. 그리고 또 모레가 수학여행인데. 나는 용돈을 적게 주는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고 집을 나섰다.

수학여행인데... 평소에 쓰던 가방 가져가기도 민망하고... 신발도 새로 사고 싶었는데... 내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교실에 도착했다. 내 속을 긁기라도 하듯 내 짝꿍이 용돈 넉넉히 받았다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다. "나 오늘 수학여행때 가져갈거 사러 가는데 같이 안갈래?"

한창 신나게 아이쇼핑을 즐기고 있을 때 마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괜히 화가 나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30분 후 다시 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나는 핸드폰을 꺼버리고 밧데리까지 빼버렸다. 그리고 신나게 돌아다녔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괜히 화를 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신발도 그렇게 낡은 것은 아니었고 가방은 옆집 언니에게서 빌릴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지…’

집에 도착했다. 벨을 누르니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참! 엄마가 오늘 일나가는 날이었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습관대로 텔레비전을 켰다.

드라마가 나와야 할 시간에 뉴스가 나왔다. 뉴스 속보였다. 이게 웬일인가. 내가 자주 타는 대구 지하철에 불이 난 것이다. 어떤 남자가 지하철에 불을 냈다. 순식간에 불이 붙어 많은 사람들이 불타 죽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엄마는 아직 집에 도착하지 않았고 텔레비전에서는 지하철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만 이어지고 있었다. 몇 번을 다시 걸어봐도 마찬가지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내리고, 꺼버렸던 핸드폰을 다시 켰다.

문자 다섯 통이 와있었다. 엄마가 보낸 문자도 두통이나 있었다. 엄마가 보낸 첫 번째 문자를 열었다. "용돈 넉넉히 못 줘서 미안해. 쇼핑센터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 중이야. 신발하고 가방 샀어." 나는 첫 번째 문자를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두 번째 문자를 열었다.

"미안하다. 가방이랑 신발 못 전하겠어. 돈까스도 해주려고 했는데... 미안... 내 딸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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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24 April 2004
사랑의 의미

고린도전서 13장 - 1 Corinthians 13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전 13: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고전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전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전 13: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고전 13: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Posted by latkagravis at 6:56 PM EDT
Updated: Wednesday, 28 April 2004 4:20 AM 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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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18 April 2004
왁스 - 엄마의 일기

너그럽게 웃으시는 당신에게서
따뜻한 사랑을 배웠죠
철이 없는 나를 항상 지켜주시는
하늘처럼 커보인 당신

우연히 서랍속에 숨겨둔
당신의 일기를 봤어요
나이가 먹을수록 사는게
자꾸 힘에 겨워지신다고

술에 취한 아버지와 다투시던날
잠드신줄 알았었는데
불이꺼진 부엌에서 나는 봤어요
혼자울고 계신 당신을

알아요 내앞에선 뭐든지
할 수 있는 강한 분인걸
느껴요 하지만 당신도
마음 약한 여자라는걸

알아요 내앞에선 뭐든지
할 수 있는 강한 분인걸
느껴요 하지만 당신도
마음 약한 여자라는걸

알아요 당신맘을 모두다 이해해요
믿어요 아름다운 당신을 사랑해요

이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당신
당신 모습 닮아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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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10 April 2004
Civil War Love Letter

http://www.trueinsights.com/msg/44

The Civil War Love Letter

Major Sullivan Ballou of the Union Army wrote this letter home to his wife Sarah in Smithfield, Rhode Island. It is considered to be one of history's most beautiful and moving love letters.

July 14, 1861
Camp Clark, Washington

My very dear Sarah,

The indications are very strong that we shall move in a few days -- perhaps tomorrow. Lest I should not be able to write you again, I feel impelled to write lines that may fall under your eye when I shall be no more.

Our movement may be one of a few days duration and full of pleasure -- and it may be one of severe conflict and death to me. Not my will, but thine 0 God, be done. If it is necessary that I should fall on the battlefield for my country, I am ready. I have no misgivings about, or lack of confidence in, the cause in which I am engaged, and my courage does not halt or falter. I know how strongly American Civilization now leans upon the triumph of the Government, and how great a debt we owe to those who went before us through the blood and suffering of the Revolution. And I am willing -- perfectly willing -- to lay down all my joys in this life, to help maintain this Government, and to pay that debt.

But, my dear wife, when I know that with my own joys I lay down nearly all of yours, and replace them in this life with cares and sorrows -- when, after having eaten for long years the bitter fruit of orphanage myself, I must offer it as their only sustenance to my dear little children -- is it weak or dishonorable, while the banner of my purpose floats calmly and proudly in the breeze, that my unbounded love for you, my darling wife and children, should struggle in fierce, though useless, contest with my love of country?

I cannot describe to you my feelings on this calm summer night, when two thousand men are sleeping around me, many of them enjoying the last, perhaps, before that of death -- and I, suspicious that Death is creeping behind me with his fatal dart, am communing with God, my country, and thee.

I have sought most closely and diligently, and often in my breast, for a wrong motive in thus hazarding the happiness of those I loved and I could not find one. A pure love of my country and of the principles have often advocated before the people and "the name of honor that I love more than I fear death" have called upon me, and I have obeyed.

Sarah, my love for you is deathless, it seems to bind me to you with mighty cables that nothing but Omnipotence could break; and yet my love of Country comes over me like a strong wind and bears me irresistibly on with all these chains to the battlefield.

The memories of the blissful moments I have spent with you come creeping over me, and I feel most gratified to God and to you that I have enjoyed them so long. And hard it is for me to give them up and burn to ashes the hopes of future years, when God willing, we might still have lived and loved together and seen our sons grow up to honorable manhood around us. I have, I know, but few and small claims upon Divine Providence, but something whispers to me -- perhaps it is the wafted prayer of my little Edgar -- that I shall return to my loved ones unharmed. If I do not return, my dear Sarah, never forget how much I love you, and when my last breath escapes me on the battlefield, it will whisper your name.

Forgive my many faults, and the many pains I have caused you. How thoughtless and foolish I have oftentimes been! How gladly would I wash out with my tears every little spot upon your happiness, and struggle with all the misfortune of this world, to shield you and my children from harm. But I cannot. I must watch you from the spirit land and hover near you, while you buffet the storms with your precious little freight, and wait with sad patience till we meet to part no more.

But, O Sarah! If the dead can come back to this earth and flit unseen around those they loved, I shall always be near you; in the garish day and in the darkest night -- amidst your happiest scenes and gloomiest hours -- always, always; and if there be a soft breeze upon your cheek, it shall be my breath; or if the cool air fans your throbbing temple, it shall be my spirit passing by.

Sarah, do not mourn me dead; think I am gone and wait for thee, for we shall meet again.

As for my little boys, they will grow as I have done, and never know a father's love and care. Little Willie is too young to remember me long, and my blue-eyed Edgar will keep my frolics with him among the dimmest memories of his childhood. Sarah, I have unlimited confidence in your maternal care and your development of their characters.

Tell my two mothers his and hers I call God's blessing upon them. O Sarah, I wait for you there! Come to me, and lead thither my children.

Sulliv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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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llivan Ballou, age 32, was killed on the battlefield in the 1st Battle of Bull Run seven days after writing this letter.

Posted by latkagravis at 2:42 PM 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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